By 류광현 2018.06.14
반복되는 '올빼미 공시'로
연휴가 두려운 투자자
직장인에게 연휴는 황금처럼 귀하지만
투자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늦장 공시 때문입니다.
*공시
: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에 대한 중요 정보를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
일례로 지난 설 연휴 직전이었던
14일 장 마감 후 투자자들은
'또 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려야 했습니다.
한미약품과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이하 KAI)에서
올빼미 공시를 단행한 탓입니다.
올빼미 공시란
주가에 악재가 될 만한 내용을
장 마감 후나 주말·연휴 직전에
공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재는 적자 전환이나
임상시험 중단 등이 있습니다.
한미약품은 지난 2월 14일
장 마감 후인 오후 3시 51분에
다국적 제약회사 일리이릴리에 기술 수출한
면역질환 신약 후보 물질의
임상 시험을 중단한다고 밝힙니다.
(정규시장 폐장 시간은 15:30)
KAI도 같은 날 오후 3시 47분에
영업손실 1,971억 원,
당기순손실 2,349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고 공시합니다.
올빼미 공시 막아야
투자자들은 이런 올빼미 공시로 인한
금전적·심리적 피해가 크다고
오랫동안 호소해왔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처음부터
불리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개인 투자자일수록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오로지 공시에 의존해 투자할 수밖에 없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내부자 거래 및
공매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올빼미 공시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투자자의 기대와 사뭇 다릅니다.
올빼미 공시를 해도 기업을 제재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1년에 1만5,000건이 넘는 공시를
일일이 가늠할 수 없고
각 공시의 인위적·악의적 의도를
가려내는 일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금융감독원은 2006년
올빼미 공시를 개선하기 위해
공시서류 제출 시간을 '평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못 박았습니다.
다국적 기업과 국내 기업 간의 의사결정 시간,
장 마감 후 시간외매매,
공시의 전파성을 고려하면 여기서
공시서류 제출 시간을 더 줄일 수는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이
불성실 공시 기업을 직접 가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그런 기업에 투자하지 말라는 것이죠.
긍정적 측면도 살펴야
또 일각에서는 올빼미 공시의
긍정적 효과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국내 주식시장이
각 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악재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올빼미 공시가 주식시장 내
과열·과민반응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의도적으로 공시를 늦추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많습니다.
올빼미 공시는 '신뢰도'를 낮춘다
한미약품의 사례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당시 한미약품은 연휴 직전의 늦은 공시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파트너사인 릴리에서 14일 정오에
임상 중단을 통보받았고
중단 소식을 들은 당일에
최대한 빨리 공시했다고 주장했죠.
또 외국 파트너사들은
설 연휴가 휴일이 아니기에
공시 시점을 고의로 조정한 것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특히 한미약품은
지난 2016년 베링거인겔하임 기술 수출의
계약 취소 공시 때문에
이미 한 차례 여론의 뭇매를 받았기 때문에
이 공시는 완벽히 처리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미약품은 2016년 9월 말
베링거잉겔하임 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된 걸 알고도 14시간이 지난
다음 날에야 공시해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한미약품이 정말로 절차를 제대로 밟다가
시간이 늦어졌을 수도 있지만
과거에도 같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믿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마지막 진실이 거짓으로 보이는 것이죠.
한미약품뿐이 아닙니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지난 8일
한국항공우주(KAI)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공시했습니다.
설 연휴 전 장 마감 후
적자 전환 공시를 늦게 했던 KAI는
최근에 또 소송 제기, 소송 판결 등에 대한
사실 공시를 지연했고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의 제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올빼미 공시로 잃은
신뢰의 가치
이런 공시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공시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일까요?
아닙니다. 최대 피해자는
올빼미 공시를 한 해당 기업입니다.
'올빼미 공시' 논란은
기업 신뢰의 가치를 훼손합니다.
투자자의 신뢰를 잃은 기업은
아무리 광고를 하고 공익 활동을 펼쳐도
무익한 일이 되어 버리죠.
기업 신뢰는
올빼미 공시로 획득한 이익보다
수십, 수백 배의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한미약품과 같은
신약 개발 업체의 경우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간
투자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신약을 개발해야 합니다.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의도적인 올빼미 공시는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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