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w 2017.06.19
Goodbye, Yahoo!
'인터넷 검색의 개척자' 야후가
오랜 실적 부진 끝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994년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생이던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가
첫 포털 사이트로 선보인지 23년 만입니다.
(야후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필로, 제리 양 ©successstory.com)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은
44억8,000만 달러(약 5조 원)에
야후를 인수하는 계약의
모든 절차를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제 야후는 버라이즌의 AOL과 합병돼
오스(Oath)라는 디지털 미디어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전성기 시절 야후의 첫 화면)
잘 나가던 ‘포털계의 맏형’
야후는 2000년대 초만 해도
세계 최고 검색 엔진이었습니다.
요즘 구글(google)이
'검색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로 쓰이듯
야후라는 고유명사가 '웹서핑 한다'는 뜻의
보통명사로 자리잡을 정도였습니다.
1996년 주식시장에 상장한 후에는
그 기세가 더 대단했습니다.
거래 첫날 주가가 154% 폭등했고
2001년 1,250억 달러(약 140조 원)라는
시가총액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여 개국에 해당 언어 사이트를 만들었고
한국에도 1997년 야후코리아를 설립했죠.
당시 '야후 꾸러기'라는 어린이용 포털과
야후 이메일 등을
많은 한국인이 사용했습니다.
(국내 초등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던 야후 꾸러기의 첫 화면)
야후가 무너진 이유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야후는 조금씩 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공동창업자들이 물러난 이후
경영진의 오판이 계속되면서
구글, 페이스북 등의 후발주자들에게
검색, 메일, 커뮤니티 등
핵심 서비스의 점유율을 속속 빼앗겼습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급격히 이뤄진
'모바일화' 흐름에도 대응이 늦었습니다.
구글은 공교롭게도 야후 창업자의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후배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만들었는데요.
야후보다 몇 년 늦게 나왔지만
검색 품질 면에서 월등히 앞섰습니다.
한때 야후는 구글 인수를 저울질하다가
자체 검색 도구 개발로 선회했지만
구글의 품질을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네이버, 다음 등에 밀려
서비스를 종료한 지 오래입니다.
(©CNBC)
'선택과 집중'없이 갈팡질팡
야후는 또 '콘텐츠 회사'로 변신하겠다며
백화점식으로 서비스를 확장했지만
성공을 거둔 신사업이 없었습니다.
한 분야에 집중하지 못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R&D나 마케팅 측면에서
회사 역량을 분산시키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애플과 구글이 시장 주도권을 장악했죠.
야후는 뒤늦게
텀블러를 비롯해 수십 개의 스타트업을
M&A로 사들이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습니다.
'백약이 무효'인 상태가 된 것이죠.
전성기 몸값의 1/30에 매각
경영진의 오판으로
시장 진입이 늦은 기업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매일 흐름이 바뀌는 IT 분야에서는
더더욱 '발빠른 선택'이 중요하죠.
한창때 몸값의 30분의 1밖에 안 되는
초라한 금액에 매각된
'포털의 원조' 야후의 몰락은
한국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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