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상품의 비밀③ 검찰은 왜 삼양라면을 몰락시켰나

2017-07-31 20:46
기획 콘텐츠
written by hw


 

 

라면 먹고 갈래?”

 

한국인의 식생활에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라면이죠.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연 평균 73, 세계 1 !

 

2위 베트남이 55개이니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참 각별하다 할 수 있죠.

 

한국 최초의 라면은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입니다.

54년째 팔리는 대표적인 장수상품인데요.

 

가로 20cm, 세로 20cm, 무게 120g.

강렬한 주황색 바탕으로 친숙하죠.

 


(1963년의 삼양라면. ©삼양식품)

 

 

10원으로 굶주림을 달래다

 

삼양라면의 탄생은 6.25 전쟁 후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던

척박한 경제환경 속에 이뤄졌습니다.

 

삼양식품 창업자 고 전중윤 명예회장은

남대문시장에서 미군부대가 남긴 잔반을

끓여 만든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장사진을 친 노동자들을 보게 됐는데요.

 

식량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던 중

1950년대 일본에서 경영연수를 받을 때

맛봤던 라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일본 묘조(明星)식품을 찾아간 끝에

기계와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63 915

국내 최초의 라면을 내놓게 됩니다.

 

출시 당시 한 봉지 가격은 10.

꿀꿀이죽 한 그릇이 5원임을 감안해

최대한 저렴하게 매겼습니다.

 


(과거 삼양라면 광고. ©삼양식품)

 

오랜 기간 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에 라면을 알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라면을 실이나 플라스틱 등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죠.

 

삼양식품 모든 직원과 가족들이

극장이나 공원을 돌며 시식 행사를 열고,

거리 곳곳을 누비며 라면 홍보에 나섰습니다.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식량위기 해결을 위해

혼분식 장려 정책을 펼치면서

삼양라면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 삼양식품의 매출 성장률은

최저 36%, 최고 254%에 달했습니다.

 


(삼양라면은 1960년대 말 80%를 넘는 압도적 시장점유율로 승승장구했다. 1968년 삼양라면 360만봉지를 베트남에 수출하는 계약을 맺는 장면. ©국가기록원)

 

 

후발주자의 등장과 역전

 

라면이 인기를 끌자

여러 업체가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원조삼양식품의 아성은 강력했습니다.

1969년 라면시장 점유율이

83.3%에 달했죠.

 

가장 눈에 띄는 후발주자는 농심이었는데요.

이들의 추격 전략은 물량공세였습니다.

 

롯데라면’ ‘소고기라면’ ‘짜장면’ ‘농심라면

갖가지 신제품을 쏟아내면서

1970년대 점유율을 30%대로 올라서는 등

만만찮은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삼양라면의 디자인 변천사. ©삼양식품)

 

1980년대에는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이

라면시장에 진출하면서

지금의 4’ 경쟁구도가 완성됐는데요.

 

그러던 중 1989,

라면시장을 뒤흔든 초대형 사건

우지파동이 터집니다.

 

당시 검찰은 삼양식품이

라면 제조에 공업용 우지를 썼다며

주요 임직원을 줄줄이 구속시켰는데요.

 

국민 식품공업용 원료를 썼다는 발표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삼양식품의 도봉동 공장은 가동을 중단했고,

1000명 이상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으며,

60%에 달하던 시장점유율은

15%로 급전직하했습니다.

 


(소녀시대가 등장했던 과거 삼양라면 광고. ©삼양식품)


 

우지파동삼양라면은 억울하다

 

하지만 삼양식품은

합법적으로 수입한 식용 유지라며

검찰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끈질긴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79개월 만인 1995 7,

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미

삼양라면의 브랜드 가치는

회복이 어려울 만큼 떨어진 후였습니다.

 

농심에 점유율 1위도 내어줘야 했습니다.

이때 바뀐 라면시장의 1위 자리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죄판결을 거둔 승리의 기쁨보다

회사가 그동안 겪었던 인고의 시간과

수천억원의 손해를 감수하는

비애가 너무나 컸습니다.

 

우리가 겪었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식품성분의 유해성 논란 문제는

전문가의 과학적 분석이 선행돼야 합니다.”

 

ㅡ 고 전중윤 명예회장

 


(핑클이 등장했던 과거 삼양라면 광고. ©삼양식품)

 

 

산전수전 겪은 원조 라면

 

삼양식품 측은 우지파동을

‘6공화국 시대 검찰의 진실 왜곡 사건

이라고 규정합니다.

 

당시 우지 사용과 관련해

식품전문가나 관련 단체들이

사용해도 문제 없다는 의견을 냈지만

검찰이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입맛에 맞는 수사를 했다는 주장입니다.

 

식품의 유해성 논란은 지금도

종종 벌어지는 일인데요.

 

공익을 감안하면 당연히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일부 방송이나 시민단체가

시청률을 높이고 주목을 받을 목적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일도

많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우지파동은 결과적으로

후자 쪽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죠.

 


삼양라면)

 

요즘 대형마트에는

100여종이 넘는 라면이 진열돼 있습니다.

매년 수십 종의 신제품이 등장하며

경쟁이 치열한데요.

 

삼양라면은 지금도 해마다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순위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는 있지만,

과거의 영광을 완벽히 되찾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50년 넘게 산전수전을 겪었으니

언젠가 다시 한번

내공을 발휘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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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hw

신문공장 노동자

hw@ciderm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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