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맥주 '필라이트'는 맥주가 아니다

2018-06-28 22:40
경제 이야기
written by 박동수




수입맥주가 왜 이렇게 쌀까?


여름이 부쩍 가까워진 오늘은

맥주 시장을 2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수입맥주의 낮은 가격의 비밀,

그리고 두 번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국산맥주의 전략입니다.


우선 수입맥주 가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퇴근길, 

집 앞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1만 원에 4캔 수입맥주'가 

나를 유혹합니다.


어느 날에는 6캔에 1만 원인

수입맥주도 눈에 띄는데요,

도대체 수입맥주 가격이

왜 이렇게 낮아졌을까요?



(ⓒ이마트24) 


과거에도 수입맥주는

다양한 맛과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지만

국산맥주에 비해 가격이 높아  

시장점유율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국산맥주와 비슷한 가격  

혹은 더 낮은 수준의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급속도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편의점에서는 이미

수입맥주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50%를 넘어섰습니다.


수입품은 관세가 붙으니

국산품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돼야 하는데

어떻게 수입맥주는 국산보다

더 저렴할 수가 있을까요?




 

세율은 같지만, 대상이 다르다! 


수입맥주 가격의 비밀은

세금 부과 방식에 있습니다.  


수입맥주든 국산맥주든 

맥주 한 캔당 제조원가(과세표준)

주세 72%와 교육세(주세의 30%)

부과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세금이 부과되는 기준,

즉, 과세표준이 크게 다릅니다.


국산맥주의 과세표준에는 

맥주 제조 비용은 당연하고

여기에 광고비나 임직원 급여 등의

판매관리비 예상 이윤까지 포함됩니다. 


하지만 수입맥주는 수입 관세를 포함한 

수입원가(수입신고가)만 과세표준이 됩니다.


관세가 이미 포함된 수입원가에 

72%의 주세, 그리고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가 붙죠.



즉, 국산맥주는

판매관리비, 예상 이윤까지

모두 포함된 출고원가에

세금이 부과되지만, 


수입맥주는 수입신고가에만

세금이 먼저 매겨지고

그 이후에 판매관리비와 이윤을 붙여

판매하기 때문에 수입맥주가

세금을 훨씬 덜 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17년

해외 브랜드 하이네켄코리아와  

국내 브랜드인 하이트진로의 

감사보고서를 비교해보면 이런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하이네켄코리아

상품판매액 1,170억원 중

주세 및 교육세는 190억 원으로 

총 상품판매액의 16.2%인 반면, 


국산 맥주회사인 하이트진로는 

상품판매액 2조9,884억 원 중

1조3,272억 원을 주세 및 교육세로 납부해

그 비중이 무려 44.4%에 달했습니다.




수입맥주는 이렇게 다소 불공평한

세금 부과 정책 덕분에

많은 양을 수입할수록

수입 원가가 낮아지므로, 


더욱 공격적인 할인 행사를

펼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국산맥주 회사의 반격 – 발포주 


국내 맥주 회사들도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으므로

반격을 시도하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초록색 코끼리(최근엔 파란색)를 내세워 

1만 원에 12캔이라는 광고를 하고 있는 

하이트진로의 '필라이트'입니다.



(ⓒ하이트진로)


그런데 지난해 4월 출시된 필라이트는 

엄밀히 따지면 맥주가 아닙니다. 


현행 주세법상 맥주는

주원료인 맥아(보리를 발아시킨 후 말린 것)가  

원료의 10%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국산맥주 대부분은

맥아를 70% 이상을 함유하고 있는데요,

필라이트는 맥아 함량이 10% 미만인 

'발포주'입니다. 


*발포주

: 주류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주액에 함유되어 있다가

병마개를 따면 거품이 나는 술 종류.



(ⓒ국가법령정보센터)



코끼리 맥주가 저렴한 이유

 

필라이트는 맥아 함량을 낮췄기 때문에 

같은 회사의 제품인 하이트에 비해  

출고가를 58%로 낮출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발포주는 주세법상

기타 주류에 해당되어

주세율이 30%로 적용됩니다.


맥주의 72%와 비교하면

훨씬 적은 세율이죠.


그래서 1만 원에 12캔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맥주에 비해 맥아 함량이 적기 때문에 

맛에 대한 평가는 밍밍하다는 의견부터 

의외로 괜찮다는 평가까지 다양합니다.


맛에 대한 평가는 갈리지만

마케팅면에서는 누가봐도 대성공입니다.


저렴한 가격이 큰 무기가 되어

불황에 강하다는 발포주답게

출시 후 1년 동안

2억 캔이 넘게 판매된 것이죠.



(ⓒ하이트진로)



발포주로만 대응하긴 어렵다


이런 성공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선 아직 필라이트를 제외한

발포주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데요,


여기에도 또 각 회사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카스를 앞세워 맥주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오비맥주는 

발포주를 만들어 판매할 경우,


자사 대표 제품인

카스의 매출이 줄어드는

이른바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 잠식)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

: 한 기업의 신제품이 기존 주력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


아직은 시장 점유율이 미미한

롯데주류 역시 위험부담을 안고

새롭게 발포주를 제조 및 생산하는 대신,

 

'쿠어스 라이트' 및 '블루문' 등  

인기가 좋은 수입맥주를

적극적으로 들여오거나 또는

저가 수입맥주를 다량 들여오는 것

더 큰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수입맥주 '쿠어스 라이트'와 '블루문' ⓒ각 사)



국산맥주를 역수입하라! 


이런 상황에서 국산맥주의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또 하나의 묘수는 

해외에서 생산한 국내 브랜드 맥주를 

역수입해 오는 방법입니다. 


오비맥주는 지난 4월, 

카스의 월드컵 패키지 중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740ml 대용량캔 제품을

미국에서 역수입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용량 카스맥주 ⓒ오비맥주)


수입맥주로 분류되는 이 제품은 

편의점에서 3,500원으로 판매되고 있는데요,


국내에서 생산되는 카스 500ml 캔과 

100ml당 가격으로 비교하면

각 473원과 540원으로 67원,

약 12%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방식은 오비맥주의 모회사가  

버드와이저, 호가든 등을 보유한

세계 최대 맥주 제조사

AB인베브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입니다.


(참조-오비맥주, AB인베브에 인수되다!)


오비맥주의 입장 역시 

국내에 없는 사이즈의 제품이므로  

해외에서 만들어 왔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어 

향후 이 방식이 다른 회사, 다른 제품에까지 

확산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오비맥주의 자회사 AB인베브(AB InBev)의 다양한 브랜드 ⓒ오비맥주)



사면초가의 국산맥주, 위기를 기회로! 


이렇듯 그동안 맛이 없다는 논란 속에 

어려움을 겪던 국내 맥주 회사들이 

가격까지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산맥주 업체들의

'역차별'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조세당국은 최근 맥주 과세 체계

개편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소비자의 취향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맥주 시장 규모는 커지는 등 

오히려 기회는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됩니다.

폭염주의보를 불러일으키는  

뜨거운 날씨로 인해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한 시기가

곧 찾아올 것입니다.


항상 위기 속에 기회가 있습니다. 

국산 맥주 업체들이

이 위기를 잘 해쳐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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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동수

어려운 경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드립니다~

pdongs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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