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가전 기업 '월풀'이 삼성과 LG에 밀린 이유

2017-10-19 14:48
기업 이야기
written by 정근태



최근 전자제품 업계 최대 화두는

韓·美간 세탁기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세탁기 세이프가드'입니다.

 

세이프가드(Safeguard)란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격히 증가해  

자국 산업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막기 위해 취하는

관세 장벽 등의 보호 조치를 가리키며

'긴급수입제한조치'라고도 불립니다.



(ⓒ월풀)


이번에 미국 대표 가전제품 기업

'월풀(Whirlpool)'이 청원한

세탁기 세이프가드는 

한국산 세탁기의 관세를 인상하여 

수입량을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인데요,

 

미국 기업이 자국 정부에

이런 요청을 했다는 것은

곧 미국 가전제품(세탁기)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영향력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미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의 세탁기 베스트셀러 15개 중  

6개가 삼성 제품입니다. 

 

전체 시장 점유율도 상당해서

매일경제가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대형 세탁기 시장 점유율

1위는 월풀(38%)이지만,


삼성(16%)과 LG(13%)가 그 뒤를 이어

2~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반 세탁기가 아닌 프리미엄 세탁기로 범위를 좁히면 월풀과 국내 기업들의 순위가 역전된다)

 

여기서 냉장고, 세탁기, 오븐,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5대 생활가전 제품으로 폭을 넓히면 

한국 제품의 영향력은 더 커집니다.

 

미국에서 팔린 가전제품

3대 중 1대가 한국산인 것이죠.

 

심지어 2017년에는

미국 가전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19.2%)과 LG전자(15.8%)가

처음으로 월풀(15.7%)을 꺾고

1, 2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가전제품 업계 1위 월풀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한국 기업들에게 밀리고 있는

월풀도 한때는 그 위상이 대단했습니다.  


1911년 설립하자마자

전기로 작동하는 자동 세탁기를

시장에 내놓으며 큰 주목을 받은 월풀은,


2010년엔 세계 가전제품 업계 1위에 오른 

미국 가전기업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월풀에서 개발한 최초의 자동 세탁기와 창립자, 그리고 아래는 이후 발전된 형태의 세탁기 ⓒ월풀) 

 

이전까지 사람들은 수동으로 직접

물리적 힘을 가해 세탁하고 헹구고 탈수하는 

실린더식 세탁기를 이용하고 있었는데요,


전기로 작동하는 자동 세탁기를 통해

그런 불편함을 해소한

월풀의 성장세는 빨랐습니다. 

 

1936년 유럽과 아시아에  

세탁기 수출을 시작했고, 

 

제 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에는

전기 점화식 건조기를

세계 최초로 내놓으며  

마켓리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렇게 월풀은 라인업을 확대하며

1990년 들어 연간 매출

80억 달러(약 9조 원)를 달성하고, 


2006년 당시 미국 가전제품 생산 

3위 기업이던 메이택사와 합병하여

2010년 세계 가전제품

업계 1위 기업으로 거듭납니다.


그 시절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양문형 냉장고 대부분이 

월풀 제품인 것만 봐도 브랜드 위상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월풀에서 개발한 최초의 전기 점화식 건조기 ⓒ월풀) 


 

월풀은 왜 삼성·LG에 밀렸나 


그런데 왜 이런 글로벌 대기업이 

삼성과 LG에 밀리게 된 걸까요? 

 

그 이유는 속도에 있습니다.


삼성의 '속도 경영'은 전설적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끌던 1983년

삼성은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그해 6개월 만에 64K D램을 개발했는데,


이 일에 일본 기업들은 6년을

투자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삼성의 속도는 그야말로 혁신이었습니다. 


그후 삼성전자는 지금까지도 사업 검토에서

최종 매출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하는 속도 경영으로 달려왔고,


이 강력한 경영 방식으로 

막강한 애플도 제쳤습니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매년 벌이는 치열한 경쟁도 

개발 속도를 높이는데 한몫했습니다. 

 

두 기업은 완전히 다른 기능과

디자인의 신제품을 거의 매년

시장에 빠르게 내놓았는데요,

 

반면에 미국 가전업체들은 

보통 4~5년마다 신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에

이들의 속도 경쟁에 끼어들 수가 없었죠. 

 

뒤늦게나마 신제품 교체 주기를 

1~2년 단위로 줄이긴 했지만 

이미 미국 가전 시장 트렌드는 

한국 기업이 주도하게 된 후였습니다. 

 

결국 월풀은 시장에서 경쟁 우위 잃게 되자 

ITC에 세이프가드 청원 심사를 제기합니다. 

 

*ITC(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미국 대통령 직속

준사법적 독립기관, 반덤핑 및 관세,

불공정 행위 등 무역조사 등을 진행함.

 

세이프가드 발동을 통해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령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겠다는 것이죠.  

 

미국 현지시간으로 19일 열릴

세이프가드 공청회를 위해

월풀 측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두 기업에

5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할 것을 주장

의견서를 ITC에 제출했는데요,


이 조치가 발동되면 한국산 제품은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 수입량 제한 등의

페널티가 상당해 시장 경쟁력에서

미국 제품에 크게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을 받아들여야 성장한다

 

하지만 월풀의 시장 패배 원인이 

정말 '가격' 때문일까요? 

 

월풀의 제프 피티 회장은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평등한 경기장에서 경쟁한다면 

우리는 더 많이 팔 것이고 

적어도 1,300명을 고용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제프 피티(Jeff M. Fettig) 회장 ⓒ월풀)


그러나 월풀의 클라이드 지역 공장 관리자는

"월풀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 계획이 없어

직원들이 초조해한다"고 말했습니다. 

 

월풀의 진짜 문제는 

평등한 경기장이 아닌 것이죠.

 

기업이 특정 산업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선 

3가지를 고려합니다.

 

기존 시장에서의 저비용(가격우위) 

기존 시장에서의 차별화 

기존 시장에서의 집중화 

 

그리고 이런 모든 방법은 소비자에게 

가치와 이익을 안겨주는   

결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월풀은 원가를 낮추기 위해 

경영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기획 상품을 개발하지 않고,


대신 불공정무역 이라는 핑계로 

세이프가드 카드를 선택했습니다. 

 

경쟁은 어려운 법이지만 

쉬운 길을 택하면 성장할 수 없고 

성장하지 못하면 결국 패배할 뿐입니다. 

 


(승리를 위하여)

 

과거 1980년대 미국 소비자들이 

에너지 효율이 좋은

일본 소형자동차를 원할 때, 

 

미국 정부의 무역 보호 정책을 바랐던

미국 자동차 회사들과 

월풀의 모습이 꼭 닮아 보입니다.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바람과 달리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 본토로까지 진출했지만,


미국 기업을 도태시키긴커녕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은 물론이고,

 

자연스럽게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도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해

소비자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권이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생태계 흐름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백악관 아카이브)


한-미 간 무역에서 발동된

마지막 세이프가드는 

15년 전의 일입니다.

 

2002년 당시 부시 대통령은 

한국산 수입 철강제품에

8~30%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를 발동했지만,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결국 협정 위배 판정을 받았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도 부시 전 대통령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이런 폐쇄적인 방법이 

정말로 자국을 살리는 길일지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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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정근태

하나의 문장에는 하나의 생각이, 하나의 행동에는 하나의 신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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