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불황, 이제는 끝인 걸까?

2017-11-16 18:00
경제 이야기
written by 박지은




헤이세이 불황의 시작

 

올해 조금씩 회복세를 보여준

일본 경제는 많이 알려진 것처럼 

오랜 시간 불황을 겪어왔습니다. 


흔히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는 이 시기를

다른 말로 헤이세이 불황이라고도 하는데요,


여기서 헤이세이(Heisei[平成])는

군주제가 유지되고 있는 일본에서 

아키히토 천황이 즉위한

1989년 1월 8일부터 사용하는 연호입니다.


*연호[年號]

: 군주 국가에서 군주가 자기의

치세 연차에 붙이는 칭호.


(헤이세이의 시작 ⓒ재팬타임즈)


일본의 불황을 헤이세이 불황이라고도

표현하는 이유는 시작이

1991년 '헤이세이 3년'부터였기 때문인데요,


도대체 1991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후 일본이 긴 불황에 빠진 걸까요? 



부동산 버블 붕괴


가장 큰 계기는 '버블'의 붕괴였는데요,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당시 호황이던

부동산 시장에 투자하면서

부동산 가격은 크게 상승하게 됩니다.


은행들은 상승된 가격의 부동산을 담보로  

기업에 더 많은 대출을 해주었고,


기업은 그 돈으로 또다시

부동산을 구매하는 구조로

투자 규모만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죠.   

 

이에 거품을 우려한 일본 정부가

1989년 이후 긴축 정책을 단행하고

1990년 부동산 대출 규제를 실시하면서

부동산 시장에서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많은 이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었고,


돈을 돌려받지 못한 금융 기관까지

불량 채권만 보유한 채

파산에 이르는 결과가 발생한 것입니다.




 

플라자 협정 

 

그런데 애초에 이런 버블이 형성된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습니다. 


1985년 미국은 자국의 무역 적자가 심해지자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 영국으로 구성된

G5 재무장관 회담을 통해,


1달러당 240엔대였던 환율을

1달러당 150엔으로

평가절상하기로 합의합니다.


이를 플라자 협정이라고 하는데요,

그동안 엔화가 실제보다 훨씬 낮게 평가되어

일본의 수출이 활발했고 이게

미국의 무역 수지 악화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한 것이죠.


*평가절상

: 화폐의 대외 가치를 인상하는 일.

한 나라의 화폐 가치가 높아지면

수입 원가가 낮아져 물가가 내려가지만,

(ex 일본 내에선 1달러짜리 물건이

240엔이었다가 150엔으로 떨어진다)

외국에서 표시되는 물건값은 오르기 때문에

수출이 억제되어 국제 수지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ex 외국에선 240엔짜리가1달러였다가

평가절상 후 2달러로 비싸지는 것)



(플라자 협정 1985년 ⓒ위키피디아) 


엔화 평가절상으로 인해

일본 기업들은 수출에 큰 어려움을 겪는데요


이렇게 엔화의 가치가 높아서

무역 불균형이 일어나는 현상을

엔화 강세라고 합니다.


플라자 협정 이후 일본은

엔화 강세의 충격을 견디기 위해  

이자율을 4차례나 인하합니다. 


보통 이자율을 낮추면 대출이 늘어

시중에 도는 돈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물가가 오르면서 경기가 활발해지는데요,


아무리 이자율을 내리고 통화량을 늘려도

시장의 물가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일본 내수 시장

더는 성장할 여지가 없는

포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들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게 되고

이로 인해 앞서 말한 버블이 형성된 것이죠.



(닛케이지수를 보는 일본인 ⓒeveningstandard)

  

은행은 BIS 비율이라고 해서 

위험 자산에 대해서 최소 8% 이상의

자기자본을 유지해야 하는데요,


*BIS 자기자본비율

: 국제결제은행 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이 각국 은행의 안정성을 위해

정한 자기자본비율로, 은행은 위험 자산에

대해 자기자본을 최소 8%는 보유해야 한다.

  

버블 붕괴로 위기에 빠진 일본의 은행들은

불량 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새로운 대출을 줄이거나

자금 회수를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은행에서부터 자금이 돌지 않자 

기업들의 설비 투자가 감소하면서

결국 실업률이 높아졌고,


그 후 일본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헤이세이 불황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불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몸부림 

 

일본의 불황이 길어지자

1998년까지 재임한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는 

(1996~1998 제82,83대 일본 총리)

재정 개혁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하기도 했고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 ⓒ위키피디아)

   

그 뒤를 이은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

(1998~2000 제84대 일본 총리)   

종합경제 대책을 발표해서  

제로 금리정책을 추진하기도 합니다.   

 

3번이나 총리를 역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2001~2006 제87, 88, 89대 일본 총리)


양적완화 정책으로 금융 정책을 바꾸고  

경제학자 다케나카 헤이조를

경제재정상으로 발탁해,


우정국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금융 빅뱅 같은 성역 없는

구조조정을 시행하도 했습니다.  

 


(다케나카 헤이조 ⓒ위키피디아)

 

이런 정책들은 모두

파산 위기를 겪은 은행들이 막았던

돈의 흐름을 다시 뚫어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을 이끄는 아베 총리는

금융 완화, 재정 지출 확대, 성장 전략등  

3개의 화살로 상징되는,


전보다 과감한 성격의 금융 정책

아베노믹스를 내세워 

오랜 불황과 저성장 탈출을 시도했죠.


매월 13조 엔 규모의 국채매입을 실시하고

물가상승률 목표치도 2%로 상향조정 하는 등

공격적인 정책을 추진한 결과,


일본 경제는 최근 52개월 연속

경기 회복 신호를 보이는 등

완연한 경기 확대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아베 신조 ⓒ위키피디아)


지금까지 일본의 장기 불황에 대해

쭉 살펴보았는데요,


많은 부분에서 우리나라가 겪을 문제를

미리 보여주는 일본의 사례를

제대로 알아둠으로써

우리는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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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지은

국제경제에 관심많은 경제학도

박지은

에디터 :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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