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포자여 내게로 오라! 경제가 과학에 미치는 영향은?

2017-05-07 07:50
경제 이야기
written by 사이다경제


(과학을 포기한 자를 위한)

17C 과학혁명 여행.

-경제는 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본주의사회의 과학, 괜찮은가?

 


 

(이미지 : MBC 방송화면 캡쳐)

 

옥시보고서를 조작한 서울대학교 교수가

연구비를 유용한 것으로 밝혀져

지난 16929,

법원이 징역 2년을 구형했는데요.

 

우선,

이 사건으로 지난 5년간 아픔을 겪어온 분들께

진심으로 위로를 전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과학자들의 연구가

그 연구를 지원하는 자본으로 인해

양심을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과학자 개인의 양심에만 그 책임을 맡긴다면

이런 문제는 얼마든지 되풀이 될 텐데요.

 

, 오늘은 이렇게 경제와 과학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17세기 과학혁명을 통해 살펴보고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우선 경제윤리의 부족으로

과학이 부패한 사례, 그늘을 살펴봤으니 이번엔

경제적 뒷받침으로 가장 과학이 꽃피었던 시기,

과학혁명의 빛을 따라서 떠나보겠습니다.

 

, 과학을 안 좋아하시나요?

 

 

이제 그 눈물을 닦으시길. 고백하자면

저는 과학을 포기한 자, 과포자였습니다.

 

그런 저를 설레게 한 과학계의 아이돌,

과학혁명의 대표주자인 갈릴레이를

과포자 눈높이에 맞추어

쉬운 설명으로 만나게 해드릴 테니까요.

 

 

먹고 살기의 어려움이란

 

여기는 17세기 이탈리아.

수학책을 읽고 가슴이 뛴 의대생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생계 걱정에 아들의 공부를 반대하죠.

 

답답하고 꽉 막힌 아버지라고 생각하시나요?

 

오해입니다.

당시의 음악가들은 비율과 이론에 집착했는데

갈릴레이의 아버지는 조화로운 음을 실험하고,

우리가 들어서 즐거우면 되는 거라고 주장했죠.

이렇게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생계는 만만하지 않은 문제였던 거죠.

 

아들의 입장과 아버지의 입장에

각각 한 번씩 서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입장을 취할 생각이신가요?

 

갈릴레이는 과학자로 자리를 잡아가기 위해

망원경과 저서를 관리와 귀족에게 바칩니다.

별의 이름을 메디치가문의 별들이라 붙이고

자신이 발견한 별을 바치기도 했죠.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옥시사건을 일으킨

서울대 조모 교수가 떠오릅니다.

연구 자체에만 힘을 쏟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학자는 후원자의 요구나 가치관으로부터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과학자가 연구에만 집중하고

공정하게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철학은 신학의 시녀, 과학은 철학의 시녀?

 


 

17세기 사람들은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세상의 힘은

신을 대신해 종교가 가지고 있었죠.

 

중세로 구경을 떠나볼까요?

신학이 말합니다.

! 신이 있어.”

철학이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사람이 뭘 알겠니. 다 신의 뜻이야.”

그리고 과학에게 말하죠.

, 과학. 신이 만든 세상이니까 완벽하지 않겠냐?”

과학은 눈이 어둡습니다.

하지만 돋보기도 망원경도 없죠. 그래서 대답합니다.

. 그래!”

 

세상은 신이 만든 것이고

사람들은 성서대로 살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성서와 맞아떨어지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만 맞다고 생각했어요.

 


 

성서를 한 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신은 완벽하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이랬죠.

신은 완벽하니까, 창조물인 우주도 완벽하고,

인간도 잘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첫째, 완벽한 우주의 달은 수정처럼 매끈하고

둘째, (위성)은 세상의 중심인 지구에만 있고,

셋째, 세상은 가만히 있는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

 

그런데 갈릴레이는 궁금했습니다.

왜 그냥 믿으라고 우기는 거야?”

 

그는 그냥 믿으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험하고, 관측하고, 계산을 했고

그렇게 하나씩 발견해냈습니다!

 

 

 

철학, 과학을 낳다. 과학혁명!

 

지금 언급한 갈릴레이의 행동이 우리에겐

자연스러워보입니다만, 당시엔 파격이었습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부터

17세기 갈릴레이와 뉴턴에 일어난

과학의 놀라운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합니다

 

중세에는 철학의 시녀역할만 했던 과학이

달라져서 철학에게 이렇게 따지는 겁니다.

, 네 말 다 틀린데?”

 

과학혁명? 어떻게 이렇게 변신했냐고요?

 

바로, 도구 덕분이었습니다.

 



돌도끼와 불을 이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류가 발전했던 것처럼

망원경과 같은 물리적인 도구와

귀납법, 연역법이라는 사고의 도구가 대표적이죠.

 

여기서 잠깐, 쉬어가겠습니다.

 

망원경하면, 다들 누굴 떠올리시나요?

많은 이들이 갈릴레이를 떠올리는데요.

실제로 망원경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사람은

셋이나 된다고 합니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의 성능을 발전시켰고,

망원경을 이용해 획기적인 성과를 낸 사람이죠.

 

크게 갈릴레이의 업적을 둘로 정리해볼게요.

 

          

우선 지구과학분야입니다.

망원경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벗겨냈죠.

첫째, 달은 울퉁불퉁해.

둘째, 다른 행성도 위성을 많이 가지고 있어.

셋째. 지구가 돌아.

 

다음 물리학분야를 들으면 무릎을 치실 겁니다.

 

버스가 멈춰 서면 앞으로 쏠리고

갑자기 출발하면 뒤로 쏠린 경험 있으시죠?

관성의 법칙, 갈릴레이의 작품입니다.

 


 

잠깐, 멈춰서 이 영상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무게가 다른 두 공을 굴려

그 속도가 같다는 것도 발견했죠.

이를 뉴턴이 수학적으로 증명했고요.

위 영상은 진공상태를 구현할 수 있는, 현대에 이르러

무게는 속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해낸 거죠.

 

 

너 지금 신한테 개기니!!!!!!!!

 


 

갈릴레이는 실험과 관측, 명쾌한 논리로

학자들을 납작하게 눌러왔습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막판엔 대마왕이 나오듯

이번엔 교황의 권력이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교황은 왜 그를 잡아들였을까요?

 

이탈리아의 철학자 부르노는

우주가 무한히 크다고 주장했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지지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는데요.

 

종교는 그 동안 성서라는 체계를 가지고

사람들을 이끌어왔습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힘도 돈도 종교가 틀어쥐고 있었죠.  

그 믿음에 흠집을 낸다면

권력이 약해질 테니 두려웠던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이 그런 종교권력자들의 편이었을지,

갈릴레이의 편이었을지 궁금합니다

 

 

교황, 다음 주자는?

 


 

갈릴레이를 비롯한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종교의 권위는 점점 약해집니다.

그럼 그 힘은, 민중에게 돌아갔을까요?

 

세계사 공부 쫌 했던 분들, 아시죠?

절대왕정시대로 접어들고 맙니다.

그후로도 한참 지나야

시민들이 주권을 찾게 되죠.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요?

 

바로바로

그 권력을 가져오기 위한 왕족의 후원,

경제적인 뒷받침 때문입니다.

 

 

, 유죄판결문에 서명을 했다고?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제자 안드레아는 변절자라며 욕을 하고

브레히트가 쓴 희곡에 등장하는 갈릴레오는

스스로를 나약하고 평범하다고 말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제임스 맥라클란은 그가 현명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안드레아는 갑자기 갈릴레오를 칭찬합니다.

 

그건 바로 갈릴레오가 가택연금 중에 쓴 책.

새로운 두 과학 때문입니다.

 

종교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유죄판결문에 서명을 한 갈릴레이.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과학연구를 이어간 그의 선택.

비겁하다고 보시나요, 현명하게 보이시나요?

 

 

에디터의 시선

 

입고, 먹고, 바르고, 쓰는 것들을

우리는 연구결과를 믿고 소비합니다.

 

우리의 안전할 권리가

자연스럽게 지켜지지 않는 지금의 한국사회.

우린 더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서라도 우리를 지켜나가야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우리가 연구결과를 접할 때

그 연구결과를 내놓은 과학자의 이름과

연구비 출처에 대해

반드시 밝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요?

 

정치와 경제가,

과학과 경제가

이렇게 유착, 그러니까 들러붙을 때

그 결과 늘 피해를 보는 건

다수의 선량하고 힘없는 대중들이었습니다.

 

다시 옥시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높습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의 비양심에

2년은 너무 가벼운,

지나치게 가벼운 무게가 아닐지.

 

서울대 조모 교수와 갈릴레이,

그들의 처음을 생각합니다.

과학에 눈을 뜨고, 설렜을 두 청년.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흘렸을

땀의 농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죠.

 

그렇다면

조모교수와 갈릴레이. 무엇이 달랐던 걸까요?

 


 

끝내 양심을 저버린 조모교수는

자신과 자신이 사랑한 과학을 망가뜨렸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갈등했습니다.

 

갈릴레이의 선택,

그 이면에는 그의 진심이 있었고

그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이름에

얼룩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죠.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은

바른 방향을 가리킬 수 없다고 합니다.

갈등, 그 가운데서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물어야 할 겁니다.

이 방향이 과연 옳은 건지 말이죠.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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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사이다경제

경제/금융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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