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겨울, 도쿄 (3부, 마지막)

2016-10-18 18:22

written by 김상윤


(1989년 겨울, 도쿄 (2부) 에서 이어집니다)


/ 2016 9 5. 도쿄. 오카자키 다카이

  

 

 오카자키 다카이 씨는 아침도 먹지 않은 채 곧장 집을 나섰다. 비가 올 거라던 예보와는 다르게 하늘은 맑았다. 햇살은 초록색 나뭇잎에 부딪혀 바스러졌다. 다카이 씨는, 오랜만에 꺼내 입은 양복이 왠지 모르게 어색했지만 구두 안쪽의 바짝 마른 양말의 따뜻한 감촉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다카이 씨는 도쿄 시내를 가로질러 걸었다.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이른 시각이었기 때문에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다카이 씨는 계속 걸었다. 오다이바로 이어지는 레인보우 브릿지로 향했다. 등과 팔 사이에 땀이 나기 시작했을 때, 다카이 씨는 다리가 시작되는 도로 앞에 도착했다. 다카이 씨는 도쿄만이 내려다보이는 남쪽 통로를 따라 걸었다. 다카이 씨는 도쿄 타워와 더불어 관광 명소가 된 레인보우 브릿지를 종종 혼자 걸었다. 운동 삼아 운동복을 입고 다리의 끝에서 끝까지, 1.5km를 쉬지 않고 왕복했다. 하지만 오늘 다카이 씨는 운동복을 입지 않았고 운동을 할 생각도 없었다.

 

 맑은 날씨였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멀리 보이는 나무들은 고요한 듯 보였지만, 다리 위엔 다카이 씨의 귓바퀴를 세차게 때리는 바람이 계속 불었다. 천천히 걷고 있는 다카이 씨의 몸이 한 번 휘청거렸다. 다카이 씨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걷고 있는 정면을 바라보는 것 보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귀 안쪽으로 바람을 맞는 것이,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카이 씨는 고개를 돌려서 멀리 도쿄 시내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풍경에 다카이 씨는 무력감을 느꼈다. 바람은 다카이 씨의 온몸을 휘감았고, 입고 있던 얇은 양복 자켓이 비에 맞아 젖은 것처럼 바람에 맞아 다카이 씨의 몸통에 찰싹 달라붙었다. 다카이 씨는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다리의 중간쯤에 다다른 다카이 씨는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는 흐릿한 풍경을 눈으로 더듬어 어렵지 않게 도쿄타워를 찾을 수 있었다



 

 "실례지만, 아저씨 사진을 좀 찍었어요." 

 목에 사진기를 건 어떤 여자가 다카이 씨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사십쯤 먹어 보이는, 평범하게 생긴 여자였다

 

 다카이 씨는 깜짝 놀라 당황한 채로, 그녀가 내민 사진을 받았다. 하얗게 센 머리가 각이 진 짧은 헤어스타일에 회색 여름 양복을 입고 꼿꼿하게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남자의 가슴께 양 옆으론, 은색 철제 다리 난간이 수평을 이뤘다. 다카이 씨는 이런 비극적인 사진을 뭣하러 찍느냐는 식으로, 처음 보는 여자에게 인상을 썼다.

 그러고 나서 사진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자신의 머리, 머리 윤곽 위쪽으로 가느다란 도쿄타워를 발견했다

 

 다카이 씨는 잠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자가 다카이 씨에게 사진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바람 소리 때문에 다카이 씨는 여자의 말을 듣지 못했다.

 

 "아저씨 가지세요." 여자는 큰 소리로 말한 뒤, 몸을 숙이고 등을 구부려 카메라 끈을 목에 메었다.

 

 "돈은 받아야지." 다카이 씨는 지갑을 꺼내기 위해 자켓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팔려고 찍은 거 아니에요. 그냥 가지세요." 여자는 다카이 씨 쪽으로 몸을 돌려 말했다.

 "저는 취미로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여자는 다카이 씨의 뒤쪽에 한 동안 조용히 서 있었다.

 다카이 씨는 그녀가 사진을 주고 이미 가 버린 줄 알고 있었다.

 "아저씨는 돈이 많나요?" 여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 다카이 씨는 깜짝 놀랐다.

 

 "아직 있었군요. 어쨌든, 사진 고맙소." 다카이 씨가 대답했다.

 

 "정년퇴직 하신 분인가 보죠? 이 시간에 양복을 입고 이곳을 걷는 사람은 없어요." 여자가 말했다.

 

 "그러는 그 쪽은 이 시간에 사진을 찍으러 이곳에 왔나요?" 다카이 씨가 대답했다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는 길이에요." 여자가 대답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시구요?" 다카이 씨가 말했다.

 

 "저 결혼 안 했어요. 하고 싶긴 했지만, 글쎄 그게 잘 안됐죠. 아직도 하고 싶긴 해요. 그게 문제죠."

 여자는 커다란 검은색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만지작거렸다.

 

 "사진 좀 더 찍어줄래요? 저랑 저기 저 도쿄타워가 같이 나오도록요."

 "저 타워를 좋아하시나 봐요." 여자가 말했다. "멀어서 잘 안 나올 텐데요."

 

 "딱히 도쿄타워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다카이 씨가 말했다.

 

 다카이 씨는 처음 보는 여자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여기 이천 엔이요. 나를 위해 잠깐만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해줘요." 다카이 씨는 지갑에 있던 유일한 지폐 두 장을 꺼냈다.

 

 다카이 씨는 여자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자는 한 쪽 눈을 찡끗 감고 다카이 씨가 어디에 서야하는지 일러주었다. 다카이 씨는 난간에 기대어 섰다. 다카이 씨는 때때로 옆을 보았고 또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

 "좋아요." 여자가 말했다. "아주 잘 나오네요. 날씨가 좋아서 그래요." 여자는 다카이 씨에게 사진을 확인하라며 손짓 하며 말했다. "열 장이에요. 더 찍으시겠어요?"

 

 "서너 장 더 찍죠." 다카이 씨가 대답했다. "저기 위에서요. 내가 난간 위쪽으로 올라갈 테니 여기 아래에서 찍어주시면 됩니다."

 

 ", 좋아요. 하지만 조심하셔야 해요."

 

 "대충 맞아요." 다카이 씨가 말했다. "모든 것이 무너졌죠. 아무것도 남지 않고 전부 다요. 거의 맞췄다고 보면 돼요."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멀리서 걷는 걸음걸이만 보고 딱 알았거든요."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여자가 말했다.

 

 "나는 오래 전에 파산을 했는데, 지금까지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아요. 마누라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죠. 내 문제는 그겁니다." 다카이 씨가 말했다.

 

 여자는 곧 바로 말을 받았다. "그래서, 저기에는 올라가실 건가요, 마실 건가요?"

 

 다카이 씨는 자켓을 벗어 땅바닥에 내려놓은 뒤 난간의 창살에 발을 끼워 넣어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는 난간 옆에 있는 기둥지지대의 모서리를 밟고 조금 평평한 곳에 올라갔다. 다카이 씨는 다리 아래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제서야 다리의 높이가 실감 났다. 다리 밑으론 검은색 물이 조용히 출렁거리고 있었다. 다카이 씨는 한쪽 발로는 난간을 밟고 한 손으로는 기둥을 잡았다. 안정적인 자세로 몸을 일으켰다. 좀 전 과는 달리 바람이 거세치 않았다. 바람은 거의 산들바람처럼 약하게 불어왔다.

 

 다카이 씨는 준비가 되었다는 손짓을 해 보였고 여자도 알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때, 다카이 씨는 주머니에 있는 지갑이 느껴졌다. 몸을 움직일 때 주머니 속 지갑이 허벅지에 마찰되는 느낌이 꽤나 거슬렸다

 

 다카이 씨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뒤, 지갑 속 동전을 모두 꺼냈다. "찍으면 될까요?" 여자가 외쳤다.

 여자는 카메라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댔다

 "됐어요." 다카이 씨가 대답했다.

 

 다카이 씨는 몸을 돌려 팔을 뒤로 젖혔다. "지금이에요!" 다카이 씨가 외쳤다. 다카이 씨는 동전을 최대한 멀리, 채찍을 휘두르듯 멀리 보이는 도쿄타워 쪽으로 던졌다.

 

 "나왔나요?" 다카이 씨가 말했다.

 "글쎄요. 움직이셔서요. 사진이 나와 봐야 알겠는데요."

 잠시 후 여자가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 잘 나왔어요." 여자는 사진을 다카이 씨 쪽으로 들어보였다.

 

 "한 번 더 찍어요." 다카이 씨가 외쳤다.

 

 이번엔 손에 쥐고 있던 지갑을 들었다. 바람이 다시 세차게 불었다. 다카이 씨는 도쿄 시내를 바라보았다. 떠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요!" 다카이 씨가 외쳤다

  

 

/ 2016 9 8. 도쿄. 무력감이 하루치

 

  

 하루치 씨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회사 상사였던 다카이 씨 부인의 전화였고 그녀는 담담하게 남편의 부고 소식을 전했다다카이 씨가 또 다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기를 하다가 크게 실패했다는 소문이 회사 전체에 돌고 있던 터라 하루치 씨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하루치 씨와 회사 동료들은 먹먹한 마음으로 다카이 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다다카이 부인은 그들 앞에서 말없이 울고 있었다. 하루치 씨는 부인을 위로하며 이야기했다



 

 "다카이 부인.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마련한 작은 성의입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다카이 씨와 부인의 부채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하루치 씨는 다카이 부인을 위로하며 하얀색 봉투 하나를 건넸다. 빚을 갚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회사 동료들과 모금한 돈이었다.

 

 그러자 다카이 부인은 더욱 오열하다가 가까스로 안정을 찾은 뒤, 드디어 처음 입을 열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봉투는 이제 받을 필요가 없답니다.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러니, 다시 가져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카이 부인이 힘없이 말했다.

 

 하루치 씨와 동료들은 빚을 다 갚았다며 봉투를 받지 않는 다카이 부인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남편은 얼마 전까지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빚을 지게 된 그날 이후, 밤에 잠이 안 온다고 오랫동안 수면제도 먹고 있었죠. 매일 반복되는 과음으로 남편의 생활은 엉망이었습니다."

 다카이 부인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잠시 뒤, 조금은 진정된 모습으로 다카이 부인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정말로 빚을 다 갚았답니다. 남편은 자살을 했어요. 남은 빚을 남편의 사망 보험금으로 지불했습니다."

 

 

/ 2016 9 8. 도쿄. 무력감이 하루치

  

 

 장례식장에 들린 탓에 평소보다 귀가가 늦은 하루치 씨는, 오늘도 사람이 북적대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치 씨는 벤츠는커녕 지금까지 중고차를 사 본 적도 없었다.

 

 집 앞 현관문에 도착한 하루치 씨는, 문 안 쪽에 있는 두 사람을 생각했다. 그는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문이 열렸고 아내와 아이는 거실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그는 상당한 무력감을 느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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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김상윤

어렵사리 소설을 쓴다.

에디터 : 김상윤

어렵사리 소설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