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겨울, 도쿄 (2부)

2016-10-18 18:23

written by 김상윤


(1989년 겨울, 도쿄 (1부) 에서 이어집니다)


/ 2016 9 6. 도쿄. 하시모토 카오루

 

 

 하시모토 카오루 씨는 언제나 초밥집이 싫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카오루 씨의 직업병 때문이었다. 카오루 씨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히 일하는 사람에게로 주의가 쏠렸다. 식사를 하며 잘 앉아 있다가도 다른 손님이 일어나 나가려 하면 자기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하고 외칠 것만 같았다. 카오루 씨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직업병이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초밥집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어김없이 말을 거는 초밥집 주인아저씨였다. 초밥집 주방장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걸쭉하게 말을 섞고 싶어했다.

 

 

 카오루 씨는 오늘, 모처럼 어머니와 외식을 했다. 메뉴를 신중하게 고르리라는 마음을 먹고 길거리를 돌아다녔지만, 발걸음은 역시나 엉뚱한 곳에 멈추고 말았다. 카오루씨는 결국 그렇게 집에서 제일 가까운 초밥집의 미닫이문을 밀었다.  

 

 

 "어서 옵쇼. 손님, 따님 보너스 타서 지갑이 두둑하시죠?"


 초밥을 만들고 있던 주방장 아저씨가 대뜸 말을 걸었다. 카오루 씨는 역시나 잘못 들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밥집이란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곳이니,

 카오루 씨는 ", , ." 라고 적당히 대답하며 일단 자리를 잡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초밥을 먹으러 들어오는 손님에게 다짜고짜 왜 그런 이야기로 말을 거는지 카오루 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탔나요? 에이, 탔겠죠? 보너스."


 초밥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카오루 씨는 거참 시끄럽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못 탔습니다."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카오루 씨는 옆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눈치가 보였다

 

 "? 역시 요즘 회사 사정이 안 좋은가?" 초밥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카오루 씨는 '이런 얘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까요."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카오루 씨의 어머니는 초밥 아저씨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럼, 아직 학생?" 초밥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카오루 씨가 대답했다.

 

 "그럼 무슨 일 하는데?" 초밥 아저씨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카오루 씨는 자꾸 귀찮게 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 그게, 아르바이트요." 조용히 대답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 무슨 아르바이트? 구체적으로 가르쳐줘야지." 초밥 아저씨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 그게 그러니까,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해요." 카오루 씨는 조용히 대답했다.

 

 "호오, 굉장하군. 그러니까, 프리타 족이다, 이거지?"


 초밥 아저씨는 이유 모를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초밥 아저씨의 말이 맞았는데, 카오루 씨는 대학 졸업 직후인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카오루 씨는 20대 때부터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물론 카오루 씨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는 정식으로 직장을 갖고 싶었지만, 바늘구멍 같은 취업의 문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만 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시급은 언제나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서 카오루 씨는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비교적 자유롭고 편하면서도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아가는 프리터족이 되었다

 

 "그 카메라 한 번 엄청나게 크네. 적어도 20년은 족히 돼 보이는군요. 허허."


 초밥 아저씨가 카오루 씨와 어머니의 테이블에 놓여있는 카오루 씨의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 . 카메라……."


 카오루 씨는 커다란 검은색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한번 만지작거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초밥 아저씨는 애초에 카오루 씨의 대답 따위는 들을 마음이 없었다는 듯, 몸을 홱 돌려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오루 씨는 대학 시절 구입한 오래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지금까지도 외출을 할 때면 항상 가지고 다녔다. 목줄을 늘어뜨려 목에 걸고 다닐 때도 있었고, 핸드백이나 어느 가방에든 넣어 다녔다. 카오루 씨의 유일한 취미는 오래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 이었고, 카오루 씨의 유일한 친구는 1분 후 카메라에서 나오는 사진 속 피사체였다

 

 

/ 2016 9 6. 도쿄. 하시모토 카오루

 

  

 "그래, 이제는 정말, 집에 남자를 데려오는 일이 도통 없구나. 이제 연애는 아예 하지 않는 거니?"


 카오루 씨의 어머니가 가게에 들어 온 뒤 처음 말문을 열었다. 카오루 씨는 그 말을 누가 듣기라도 할까봐서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어머니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카오루 씨가 처음부터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위한 1인분의 생활만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활동만 지속해왔다. 언제부터인가 혼자가 편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카오루 씨의 인생에서 결혼은 '해당사항 없음'이 돼버렸을 뿐이었다결혼이야 하면 좋다고 생각 했지만 생활수준이 낮아지는 건 원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생활수준에 만족할 줄 알게 되었고, 돈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다. 그리고 자연히, 출산과 내 집 마련 그리고 인간관계는 카오루 씨의 인생에서 조용하고 느리게 멀어져 갔다

 카오루 씨의 어머니도 언제부턴가 이제는 자신의 딸의 결혼이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고, 친척들이나 동네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멋쩍게 웃는 것이 익숙해졌다. 때문에 카오루 씨는 언제나 어머니 앞에선 죄스러운 딸이었다

 

 그렇게 초밥 아저씨와 어머니와 말을 주고받다 보니, 카오루 씨는 입맛이 싹 사라졌다

 카오루 씨는 역시나 초밥집에는 오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오기도 했고 어쨌든 돌아 나가기는 이미 늦었으므로, 종업원 두 명이 저희끼리 조잘조잘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으며 메뉴 판을 살폈다

 

 종업원들은 "야아, 너 그 얘기 들었니? 어제 레인보우 브릿지에서 또 한 명이 죽었대..." 라며 수다를 떠느라 카오루 씨가 주문 신호를 보내도 전혀 와주지 않았다

 

 "여어, 3번에서 부르잖아." 하고 주인아저씨가 주의를 줬더니, 그제야 겨우 종업원 한 명이 카오루 씨 쪽으로 와서 대강대강 주문을 받았다. 카오루 씨가 주문을 마치자, 종업원은 안쪽에다 대고 "참배 하나. 튀소 하나." 라고 고함을 질렀다그러고는 또 "그 사람이 이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던 사람 아니야? 얼마 전까지 우리 가게에서 술만 주구 장장 마신 그 남자. 빚쟁이들한테 시달리는 게 괴롭다고 하면서..."하며 동료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카오루 씨는 종업원을 보며, 그렇게 수다를 떨 기운이 있으면 "참치 뱃살 초밥 1인분, 튀김 소바 1인분."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지 싶었다. 카오루 씨는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로부터 짜증이 났다.

 

 "누군가 죽었다는데, 아무렇지 않게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건 진짜 싫어. 만약 그게 나의 죽음이라면 정말이지..." 카오루 씨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카오루 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침묵했다.

 

 카오루 씨와 카오루 씨의 어머니는 종업원이 가져다 준 접시 위에 놓인, 아직 얼어 있는 참치 뱃살과 차가운 밥알을 씹었다

  

 

/ 2016 9 6. 도쿄. 하시모토 카오루

  

 

 카오루 씨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프리터족*으로 사는 것에 만족했다. 그녀는 가구가 많지 않은 좁은 집에서 소리 죽여 혼자 살았다. 그녀의 삶은 단순했다. 정해진 날에 아르바이트를 했고 쉬는 날엔 집에 머물렀다. 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면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실 수 있었고, 자주는 아닐지라도 내킨다면 홀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으며, 매달 옷도 조금씩 살 수 있었다. 주위의 시선과는 반대로, 카오루 씨는 자신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메라 필름을 사고, 집세를 내고, 어머니와 외식을 할 수 있는 만큼의 돈이면 충분했다자신의 삶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카오루 씨는 생각했다.

 


 

 

 카오루 씨가 대학을 졸업한 80년 대 말에는 일본 경제가 최고 호황기였다. 도쿄의 웬만한 4년제 대학을 나온 대학생들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기업들이 대학 졸업생들을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졸업생들 너 나 할 것 없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취업 면접에서 데면데면한 모습을 보여도 곧장 취업이 됐다

 카오루 씨의 당시 기억에 따르자면, 카오루 씨도 기업의 취업 면접에 몇 번 응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오직 회사에서 교통비 명목으로 주는 면접비로 카메라를 사기 위해서였다.

 

 카오루 씨도 사랑하던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에 그녀도 연애를 했고 한 남자를 깊이 사랑했다.

 카오루 씨가 지금까지도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는 당시 사귀고 있던, 바로 그 남자와 데이트를 할 때 사용 할 목적으로 산 것이었다. 결국 그 남자와는 오래 가지 못했지만.

 

 그 남자는 카오루 씨처럼 졸업을 앞두고 있는 4학년생이었다. 하지만 대기업에 스카우트되어 일찍이 취업을 했다. 머지않아 남자는 회사 동료와 바람이 났고 애까지 갖게 되었다. 그렇게 카오루 씨는 그 남자와 헤어지게 되었다.

 카오루 씨는 '반드시 성공해서 남들처럼 벤츠를 탈 거라던 그 남자와 결혼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지금처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지 않아도 될 뿐더러 매일 아침 저녁 지하철을 타고 다니진 않을 것 같았다.

 

 카오루 씨는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러, 집에서 도쿄 시내까지 지하철을 타고 오갔다. 카오루 씨는 지하철 인파 속에, A4용지보다 작은 공간에, 매일 자신의 몸을 구겨 넣었다.

 

 하지만 어제 카오루 씨 퇴근길은 사뭇 달랐다. 가을 날씨가 선선하니 좋았기 때문에, 카오루 씨는 집까지 걸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어제, 그렇게 그녀는 오카자키 다카이 씨를 만났다



<1989년 겨울, 도쿄>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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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김상윤

어렵사리 소설을 쓴다.

에디터 : 김상윤

어렵사리 소설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