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겨울, 도쿄 (1부)
2016-10-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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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상윤

 

/ 1989년 겨울. 도쿄. 무력감이 하루치.

  

 

 하루치 씨는 일 년 전에 도쿄 외곽에 있는 위성도시에 집을 샀다. 아내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살 집이었다. 집은 도쿄 외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직장이 있는 도쿄 중심가 출퇴근을 하는 데에 2시간 정도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룬 하루치 씨는 행복했다.

 대다수의 일본서민들이 그렇듯 하루치 씨도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했다. 하루치 씨의 경제적 수준을 미루어 보았을 때, 집을 산 것은 분명 무리였다. 하지만 하루치 씨는 착실하게 대출을 갚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가족과 단란하고 행복한 삶을 꿈꿨다

 

 "집값은 계속 오를 테니, 대출금을 모두 갚고 나면 나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겠지!"

 

 하루치 씨는 아내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우리도 벤츠를 살 수 있을 거예요!" 하루치 씨의 아내가 말했다

 "당연하지." 하루치 씨가 대답했다.



 

 하루치 씨의 확신은 그 당시 일본의 모든 서민들의 확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 3년 넘게 지속한 일본 정부의 저금리 정책의 결과, 시중에는 그야말로 돈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금리가 낮은 탓에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쉽사리 대출을 받았다. 돈은 주식과 토지에 몰렸다. 부동산 업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출을 받아 투기의 목적으로 땅을 샀고 그 결과 도쿄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땅이나 집을 사면 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해 졌고, 모두가 꿈꾸는 부자의 삶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동시에, 토지값이 오르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은 돈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려는 서민들은 점점 멀리 더 멀리 도쿄 외곽 위성도시로 떠밀려 갈 수 밖에 없었다. 하루치 씨도 도쿄의 높은 땅값에 밀려난그들 중 하나였다하루치 씨의 벤츠는 어디까지나 지하철이었다. 하루치 씨는 매일 A4용지보다 작은 공간에 몸을 구겨넣고 직장과 집을 오갔다. 



 

"나 이번에 대출 받아서 부모님 집을 사드렸어. 그 돈이 어디 가나, 오히려 결국엔 다 이득이지."

 

하루치 씨는 북적대는 지하철에 몸을 맞댄 직장인들의 이런 대화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정년퇴직한 다카이 부장님 알고 있지? 그분도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었다네." 회사에서 동료가 하루치 씨에게 말했다.

 

 "정말 재팬 이즈 넘버원이네. 이러다가 일본 땅값으로 미국을 살 수도 있을 거라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아니군."

 

 그 무렵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지고 있다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지만 아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 호황은 계속 됐고, '일본의 부동산은 절대로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토지불패!' 라는 믿음은 일본사회 전반에 걸쳐 절대적 진리로 굳건했기 때문이다.

 

 

/ 1989년 겨울. 도쿄. 오카자키 다카이.

 

  오카자키 다카이 씨는 커다란 반지를 낀 손으로 술을 한 잔 더 따르고는 옆에 앉아있는 호스티스를 바라봤다. 호스티스가 건배를 제안했다. 다카이 씨는 호스티스에게 생일선물로 80만 엔짜리 모피코트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술자리에 함께 있던 은행 관계자들은 일제히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잠깐 기다려." 다카이 씨가 소리쳤다. 다카이 씨는 가져간 100만 엔짜리 지폐다발을 확 뜯었다. 다카이 씨는 그 손의 감촉이 정말로 좋았다. 지폐를 부채꼴로 펼쳐놓고, 앉아 있는 여자들의 가슴과 스커트 사이에 넣어주었다. 5만 엔인지 7만 엔인지 세어보지도 않고 덥석덥석 집어 가슴에 넣어주었다

 

 "돈이 돈을 부르지. 돈을 써야지만 돈이 들어온다니까." 다카이 씨는 잔을 비우며 말했다.

 

 

 은행업자들은 너도 나도 다카이 씨에게 돈을 빌려주겠다고 대출 경쟁을 벌였다. 다카이 씨는 가장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았고 그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 다카이 씨는 자신이 똑똑하기 때문에 큰 돈을 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카이 씨는 버블에 탑승했다. 앞만 보고 투기에 뛰어들었다. 대출을 받아 땅을 사면 곧 팔리고, 사면 오르고 사면 돈을 버는 것에 적극 편승했다. 아자부에 땅을 사고, 그 땅값이 오르면 팔고, 아오야마 부근의 땅을 샀고, 그 차액으로 큰 이익을 남겼다. 그런 식으로 도쿄, 나고야, 교토의 땅들을 사고 또 팔았다

 

 그는 벼락부자를 꿈꿨고, 실제로 치솟는 토지가격에 그의 꿈은 현실이 되어가는 듯 했다

  

 

/ 1990년 봄. 도쿄. 무력감이 하루치. 오카자키 다카이.

 

 

 그러나 1990년 봄을 기점으로 일본 부동산 가격은 더 이상 급등하지 않았고, 오히려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하루치 씨도 예상치 못한 피해를 피해 갈 순 없었다집을 구입한지 1년 만에 가격이 믿을 수 없게 폭락했기 때문이다.

 

 

 하루치 씨 소유의 집은 일 년 전과 대비해, 40%정도로 가격이 떨어졌고,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한 하루치 씨는 집을 팔아도 대출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마저도 시세가 급락하는 집을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카이 씨의 상황은 '피해' '손실'이라는 단어, 그 이상의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일단, 다카이 씨에게 돈을 빌려준다며 대출경쟁을 하던 은행들이 일절 돈을 빌려주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돈을 빌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빌려준 돈도 하루 빨리 갚으라고 독촉했다. 다카이 씨는 그 돈을 갚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땅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는 다카이 씨 소유의 부동산은 고스란히 빚이 되었다. 그렇게 다카이 씨의 인생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모든 경제지표가 하향곡선으로 돌아섰다. 시중에 자금이 마르면서 주가는 급락했고, 대출규제로 투기성 부동산 매물이 쏟아지면서 지가는 하락했다.

 

1989년 그 해, 견고해 보이던 일본 거품경제의 바벨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던 토지불패라는 신화가 깨진 1990년은 다카이 씨뿐만 아니라 전 일본인의 머릿속에 영원히 자리 잡았다.

 


<1989년 겨울, 도쿄> 2부에서 계속

  


 

에디터 : 김상윤

어렵사리 소설을 쓴다.

에디터 : 김상윤

어렵사리 소설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