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 국내 1위 기업을 탄생시키다?

2018-02-26 18:51
경제 이야기
written by 박동수




사카린의 탄생 


사카린을 아시나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건강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은

사카린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카린이 포함되어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경고 문구 ©위키피디아) 


사카린은 아주 오래된

인공감미료 중 하나로,


1879 2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화학 교수인 아이라 램슨과

그 제자 콘스탄틴 팔베르크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실험을 마친 팔베르크는 

어쩌다 보니 손을 씻지 않고

저녁을 먹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빵이 맛있게 느껴졌고, 


빵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들에서도 모두 

단맛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던 팔베르크는

결국 단맛의 정체가 실험에서 나온

화학 물질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이후 지도 교수 램슨과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해당 물질을 사카린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사카린의 분자구조 ©위키피디아)


 

사카린에 대한 오해 


사카린은 설탕보다

무려 300배 이상 달면서도,


열량이 낮고 우리 몸에 잘 흡수되지 않아  

다이어트 식품이나 당뇨병 환자의 식단에 

널리 사용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캐나다에서 

사카린의 과다섭취가 방광암을 유발한다는 

동물 실험 결과가 발표되면서,


1977년부터 캐나다와 미국을 시작으로 

사카린을 식품첨가제로 사용하는 것이

점차 금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카린은 큰 타격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였죠.


그러나 이후 실험 과정

문제가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해당 실험에서 일반 청량음료

800개에 넣을 수 있는

많은 분량의 사카린을 작디 작은 생쥐에

매일같이 투여했음이 드러났고,


이에 사카린을 재평가하는

후속 연구들이 진행된 것이죠.


그 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사카린이 발암 물질이 전혀 아니며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1991년 미국에서

사카린 사용 금지가 풀렸고

사카린 첨가를 제한하던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부터

사용이 조금씩 허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절임 식품, 음료류, 소주 등부터 

과일 및 채소 가공품,

찌거나 삶은 옥수수 등의 여러 식품에

사카린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카린에 유해성이 없고

오히려 설탕이나 액상과당보다

건강에는 더 좋다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해도,


여전히 사카린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소비자들이 많아  

아직 널리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사카린이 한국 경제에 끼친 영향 


그런데 이런 굴곡의 역사를 가진 사카린이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의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설탕뿐만 아니라

여타 단맛을 내는 음식이 귀했던 시절인 

197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설탕 대신 사카린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던 1966년 한 가지 사건이 터집니다.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이하 한국비료)

일본으로부터 당시 수입 금지 품목이였던

냉장고, 에어컨 등 고급 전자제품과 함께,

  

사카린 2,259포대, 무려 약 55톤을  

대량으로 밀수하려다 적발된 것이죠.



처음에는 이 사건이

단순 밀수 사건으로 처리되었으나,


알고 보니 그 배경에 한일 양국의

대재벌이 관여한 것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커졌습니다.


심지어 정부의 정치 자금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며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는데요,


이 사건이 후에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사에 특히 큰 영향을 준 이유는,


한국비료가 삼성그룹의 계열사였고 

이 문제가 삼성그룹 후계 구도 결정에 

많은 변수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삼성그룹의 창립자이자

당시 한국비료 사장이었던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와 대구대학교를

국가에 헌납하며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책임을 지고

차남인 이창희 씨가  

1년간 감옥 생활을 했으며 

삼성그룹은 장남 이맹희가 이어가게 되죠.



(이맹희 전 CJ 명예회장 ©네이버)

 

*이맹희 전 CJ명예회장은 1993년

자서전을 통해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정부와 이병철 회장의 공모가 있었고 

자신은 직접 밀수 현장의 지휘를 했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삼성그룹 형제의 난 


그러나 은퇴를 선언하고 경영에서 물러난 지 

18개월 만인 1968년 이병철 회장이

다시 경영에 복귀하게 되면서,


장남 이맹희 씨는 자연스럽게 

후계 구도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뒤인 1969년엔

삼성가(家)에서 형제의 난이 발생하죠.


이를 주도했던 차남 이창희 씨와 

형제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은

장남 이맹희 씨가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 의해

경영권 승계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결국 삼성은 셋째 아들이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어받아  

국내 1위 대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의 삼성을 만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위키피디아)


*삼성가의 형제의 난 

: 1969년말 차남 이창희 씨

사카린 밀수 사건의 실질적 책임이 있는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삼성 회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삼성그룹의 탈세 의혹을 알리는

탄원서를 제출한 사건.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진실 여부를

떠나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이병철 회장이

주도자인 차남 이창희 씨와 

이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고 알려진 

장남 이맹희 씨삼성 후계 구도에서  

제외시키게 됩니다.



삼성에게 남은 숙제


한 과학자에 의해

우연히 세상에 알려진 사카린처럼, 


사카린 밀수 사건은 우리나라 경제에

커다란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삼성그룹의 오늘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 삼성전자 본사 ©삼성그룹)

 

사카린은 과거 억울한 누명도 썼지만 

이제는 명예 회복을 하고 

조금씩 이미지 개선에 나서고 있는데 반해,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벌어진

이전 정부와의 정경 유착 혐의에 대해

얼마 전 면죄부를 받았음에도

국민들의 신뢰는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 선고 결과

: 재판부는 2월 5일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해 전 정권에

뇌물을 줬다는 혐의에 대해

"전형적 정경유착을 찾아볼 수 없다"라고

판결했고 대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압에 의해 36억 원의 뇌물을 줬다고 보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한국 경제사에서 재벌

큰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여러 비리 사건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모든 진실이 밝혀진 사카린처럼 

우리나라 재벌도 오너 가문이나

일부 정치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 아닌,


보다 투명한 경영을 통해

건강한 경제 시스템을 이루는

주체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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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동수

어려운 경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드립니다~

pdongs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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