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깡의 5가지
숨겨진 이야기
새우깡을 안 먹어 본 한국인을 찾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손이 가요 손이 가"라는 CM송으로도 전 국민에게 친숙합니다. 새우깡이 처음 나온 건 1971년으로 사람으로 치면 불혹을 넘긴 52세입니다.
제품 수명이 유독 짧은 식품 시장에서 지금도 매년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민 스낵으로 손꼽힙니다. 오늘은 새우깡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다섯 가지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새우깡 출시 50주년을 맞아 출시된 '새우깡 블랙' ⓒ농심
1) 한국 최초의 스낵입니다
새우깡은 국내 최초의 스낵이라는 점에서 한국 과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제품입니다. 1960년대만 해도 군것질거리는 비스킷, 캔디, 건빵 정도였고 스낵류는 존재 자체가 생소했습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부드럽게 먹을 수 있고 값도 저렴한 스낵을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구상된 제품이 바로 새우깡입니다. 농심은 새우깡 개발 과정에서 4.5t 트럭 80대 분량에 이르는 밀가루를 사용했습니다.
물자가 귀했던 당시 경제 상황에 비춰보면 상당히 통 큰 투자였던 셈입니다. 시제품을 태우고 부수고 먹어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새우깡 특유의 맛과 식감을 내는 독특한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새우깡 광고의 한 장면 ⓒ농심
2) 소금구이 방식으로 만듭니다
새우깡을 만드는 방식이 새우 소금구이를 요리하는 방식과 똑같습니다. 새우깡은 개발 당시 기술적 측면에서도 파격을 시도했습니다. 보통 과자를 만들 때 기름에 튀기지만, 새우깡은 가열된 소금의 열을 이용하는 파칭(Parching)기법이 도입됐습니다.
새우와 밀가루를 섞어 반죽한 뒤 롤러로 얇게 밀고, 이것을 새우깡 특유의 빗살무늬로 잘라 뜨겁게 달궈진 소금에 올려 구워냅니다. 여기에 신안군 천일염과 드레싱을 뿌리면 새우깡이 완성됩니다.
이종석이 출연했던 2010년대 새우깡 광고의 한 장면 ⓒ농심
3) 신춘호 회장의 딸이영감을 줬습니다
농심 창업자인 신춘호 회장은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작명에 직접 관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새우깡 출시를 앞두고서는 '새우스낵, 새우튀밥, 새우뻥, 서해새우' 등이 거론됐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고민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신 회장의 어린 딸이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아리깡~ 아리깡~"이라 부른 데 착안해 ‘새우+깡=새우깡’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꼬마도 발음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이름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또 우리 고유음식 중 '깡밥, 깡보리밥' 등이 순박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주는 것도 ‘깡’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농심 과자 중에 '감자깡, 고구마깡, 양파깡' 등 ‘깡 시리즈’가 많았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S.E.S가 출연했던 1990년대 새우깡 광고의 한 장면 ⓒ농심
4) 꽃새우 4.06 마리가 들어갑니다
새우깡에는 새우가 몇 마리 들어갈까요? 농심에 따르면 90g 한 봉지에 생새우가 평균 4.06 마리씩 들어갑니다.
새우깡에 사용되는 새우는 꽃새우(Southern rough shrimp)입니다. 장항, 군산 등 서해안 일대에서 5~8월에 많이 잡힌다고 합니다.
역사가 오래된 제품인 만큼 포장도 여러 차례 바뀌어 왔습니다. 1970년대에는 빨간 새우 그림이 그려진 봉지 안으로 내용물이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당시 포장 기술이 열약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는 포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알루미늄을 활용한 포장재가 도입됐고, 새우 그림도 실제에 가까운 더 생생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도 트렌드를 반영해 디자인을 더욱 세련되게 조금씩 바꿔나갔습니다.
새우깡의 디자인 변천사 ⓒ농심
5) 농심 과자 매출의 25%를 차지합니다
식품 시장은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조용히 나와 조용히 사라지는 비운의 신제품도 셀 수 없이 많은데 새우깡은 다릅니다.
출시된 지 46년이 지났을 때 매년 700억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려 농심 전체 스낵매출의 25%가량을 책임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세계 75개국에 매년 900만 달러 상당을 수출하는 등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새우깡의 성공 스토리가 세계 곳곳으로 쭉쭉 뻗어나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