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구두가 말을 한다?
2017-01-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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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written by 김이오


시리즈/근현대문학으로 경제읽기


1. 산업화의 인간성 상실-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2. 산업화와 소외- 서울 1964년 겨울

3.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 도시빈민-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구두가 말을 한다고?

 


 

(이미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순실의 구두, 흔한 구두, 고흐의 낡은 구두’,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 포스터, 빨간 하이힐

 

 

구두가 알려주는 것들

 

길을 걸어가면서 얼굴, 옷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두만 보신 적 있으신가요?

성별, 나이, 계층, 취향.

구두는 의외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날카로운 사연을 담은 구두도 있죠.

오늘은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소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날, 소설의 관찰자 오선생네 월세방에

보따리 몇 개, 한 가족이 이사를 옵니다.

이삿짐도 몇 보따리 안 되는 도시 빈민이었죠.

그런데도 이 가족의 가장, 소설의 주인공인

권이 가진 구두만 열 켤레입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그는 무슨 일들을 겪었는지

그 구두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몹시 어설프고 안쓰러운 강도

 

권은 출판사에서 일하던 성실한 가장입니다.

그는 갑자기 강도로 돌변해

집주인인 오선생네에 들이닥칩니다.

 


 

구두를 벗고 들어온 그는

협박에 쓰던 칼을 흘려서

오선생이 도로 주워서 건네 주었죠.

오선생의 아들이 깨자 어깨를 토닥이고,

자기가 사는 문간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대문은 저 쪽.”이라고 오선생이 일러줍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고,

도대체 왜 이런 일까지 하게 된 걸까요?

 

 

70년대 사회와 경제의 풍경은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70년대의 사회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저임금, 저곡가 정책을 폈습니다.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도 비료값도 나오지 않죠.

이는 신경림의 농무에 잘 드러납니다.

 

그러니 농민들은 서울로 서울로 상경해

공장노동자나 공사장 일용직으로 전락하고

여성들은 술집작부가 되어버리는 일이 다반사.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 잘 드러나죠.

 

그렇다면 도시형편은 농촌보다 나았을까?

 

달동네 판잣집에서 살던 그들은

입주할 경제력이 되지 않기에

우선분양권, 일명 딱지를 투기업자들에게

헐값에 넘기고 마는데요.

지난 기사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우리는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최초의 대규모 도시 빈민투쟁사건

  



1971년 경기도 광주.

산업화와 도시화로 서울은 포화상태였습니다.

박정희정권은 무허가빈민촌 사람들에게

서울로 이사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경기도 광주의 주택단지로

무려 10만명의 사람들을 이주시켰죠.

 

무허가빈민촌 이주로 경기도에 위성도시 건설.

아름답게 들리시나요?

현실은 이랬습니다.

 


 

허허벌판에 천막 하나만 제공하고,

집은 알아서 지으라는 정부.

상권, 업무시설도 없고, 지하철은 고사하고

버스도 달랑 270번 버스 여섯 대가 전부였답니다.

 

평당 200원으로 약속한 토지대금을

8000~16000원으로 40~80배 올리질 않나,

게다가 딱지로 투기를 하는 이들을 잡겠다며

일시불로 각종 세금을 내라고 했죠.

 

민원은 무시되었고, 오히려 정부는

토지대금청구 최저가격을 12000원으로 올립니다.

거기다 대책마련을 위한 면담에,

서울시장은 제시간에 도착하지도 않았죠.

 

생계, 생존수단이 전혀 없는 이 곳에서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소시민들은

굶주림을 참고 견디다 끝내

정부의 졸속 행정에 분노

데모를 시작하는데요.

 

우리의 주인공, 권이 이 현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데모에 끼고 싶지 않았죠.

 

여기 얽힌 사람들은 세 부류였습니다.

못 배우고 가난한 철거민,

그리고 투기꾼,

마지막으로 투기꾼에게 집을 산 보통 사람들.

권은 세 번째 부류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는 자신을

나머지 두 부류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은 대학을 나와 출판사에 다니는

어엿한 식자층이라는 생각.

나 이래봬도 대학 나온 사람이오.”

 

둘째, 자신은 양반가문으로

빈민층과는 급이 다르다는 생각.

나 이래봬도 안동 권가요.”

 

그리고 권의 깔끔한 구두들은

그의 이런 생각을 함축해서 보여줍니다.

 

 

그랬던 그가 전과자가 된 이유

 

소시민이란 시민과 다르게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행동하지 않고 순응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권은 데모에 끼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소시민이었으니까요.

 

그 때 정부의 무지막지한 진압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도망을 가고, 아수라장이 되죠.

마침 그곳을 지나던 참외트럭이 있었고,

사람들은 트럭을 습격합니다.

 

너무, 너무 굶주렸던 그들은

흙 묻은 참외를 우적우적 씹어먹습니다.

 

이 순간을 목격한 권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위대의 선두에 서고

전과자가 되어 직장도 잃었습니다. 이후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막노동판을 전전합니다.

 


 

게다가 불운하게도 아이를 가진 아내가

수술을 해야하는 위급한 상황이 닥쳐

안타깝게도 강도가 되어버린 거죠.

 

 

나도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인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처할까요?

시민과 소시민.

여러분은 어디에 가까운가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관찰자, 오선생의 고민 속에 깊이 있는

작가의 자기반성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선생은 평소 지식인으로 빈자를 동정하며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정부시책에 비판적인 사람이었죠.

 

그러나 권이 자신을 찾아와

아내의 병원비를 부탁했을 때,

오선생은 외면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곧 오선생은 마음을 돌립니다.

흙 묻은 참외를 집어먹던

사람들을 보고 깨어나 데모에 참여한 권처럼

오선생도 깨달았던 거죠.

자신도 권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옷과 신발 같은 껍질을 벗고 나면

똑같이 심장이 뛰고,

똑같이 배고픔 슬픔 아픔 연민을 느끼는 인간이며

자신은 운 좋게 정부에 의해 피해를

보지 않았을 뿐이란 것을.

 

나는 저들과 다르다.

좀 더 배웠고, 좀 더 잘났다.’

소시민의 허위의식이 깨진 겁니다.

 

 

나는 저들과 다른가?

 

소설에서 오선생은 갈등합니다.

가난한 동네, 단대리에 살면서

그의 아들이 고물장수 아들에게

침 뱉은 과자를 던지는 모습을 보았거든요.

 

고물장수 아들은 과자를 얻어먹기 위해

오선생 아들의 지시대로 뱅글뱅글 돌고

흙도 털지 않고 과자를 주워 먹습니다.

 

결국 아들을 호되게 혼내고서

오선생네 가족은 단대리를 떠납니다.

 


 

권의 요청을 거절한 그는 갈등합니다.

찰스 램과 찰스 디킨스를 떠올리면서요.

둘 다 가난하게 자라

문학작품 속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그렸죠.

 

그들은 부유해진 후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찰스 램은 자신의 글처럼

정신분열증 누이를 돌보며 살았고,

 


 

(이미지: 찰스 디킨스/ 네이버 지식백과)

 

찰스 디킨스는 그의 글과 달리

빈민가 어린이들을 지팡이로 쫓아버렸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보다

그들과 함께 살아간 슈바이처 같은 분들을

우리가 성인이라고 부르는 까닭이겠죠.

 

 

남겨진 구두

 

결국 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선생은 갈등 끝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선택했고

그의 도움으로 권의 아내는 무사히 출산했지만

강도행각을 벌인 다음 날,

권은 구두만 남겨두고 사라져버립니다.

 


 

반짝반짝 구두를 닦으며

자존심을 그렇게 지키고 싶어하던 그는

그 구두를 허물처럼 벗었군요.

 


에디터의 시선

 

이 소설은 한 동안 수업에서 쓰이지 못했습니다.

 

경기도 광주 대단지 사건을

철거민 폭동으로 보도한 언론,

그 피해자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수감하고

출감 후에도 감시한 정부 때문이었죠.

 

저는 다시 처음에 이야기한 장면으로 돌아가

오래도록 고민해보았습니다.

 

강도로 마주한 권과 오선생.

이 상황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지.

 

가장으로서 더 발벗고 뛰고,

양심을 지키지 못한 권?

 


아니면,

10만명을 서울에서 몰아내고는

다 알아서 먹고 살게 되어있다는

도시계획(?)을 세운 정부?

 

여러분에게는 권과 그의 구두가

어떻게 기억에 남을지 궁금합니다.

 

차가, 혹은 가방이나 신발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약한 자존감을 포장하는

껍질일 겁니다.

 

저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나설 때

신문을 챙겨 나서곤 했습니다.

나는 다르다.’ 는 그 때 제 마음 한 켠의 생각.

이 글을 읽으며 부끄러워했습니다.

 

소시민에서 시민으로 성장해

더 나은 방식으로

이웃과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이런 저의 글이 당신을 두드리기를 바랍니다.

 

똑똑.



 

에디터 : 김이오

인생은 고오통

swingheart@cidermics.com

에디터 : 김이오

인생은 고오통

swingheart@ciderm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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